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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된 통계학과생, 응용통계학과 10 이태형

릴레이 인터뷰는 다양한 동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담아냅니다.
자신의 소식을 전하고 싶거나 오랜만에 소식을 묻고, 들어보고 싶은 동문들이 있다면 ysarch@yonsei.ac.kr 혹은 카카오채널 @연세건축총동문회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출신 연세건축인?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과 출신으로 건축공학 복수 전공하고, 지금은 뉴욕에서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태형입니다.


처음 건축과 인연을 맺게 된 게 언제였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미술관을 많이 데리고 다니셔서 그런지 예술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제가 스스로 예술적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예술을 즐기긴 했지만 제가 예술의 생산자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거죠. 사실 재수를 시작할 때까지는 건축이라는 분야에 대한 관심 자체도 없었죠.

재수할 당시 쉬는 날이면 종종 서점에 갔어요. 그때가 딱 공간 500호 특집이 나와서 궁금증에 사봤고, 그걸로 건축을 처음 접하게 된 거 같아요. 하지만, 대학은 응용통계학과로 갔죠. 통계학과에서 앞으로 이 일을 평생 하면서 재미있게 살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때 같은 학교에 건축과가 있으니 수업을 들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다행히도 여러 가지 수업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죠.

그러다 보니, 건축과 사람들과 연을 맺고, 지금은 미국 유학 후 계속 건축을 하고 있네요.

연세대학교 건축과를 다니며 나의 성공시대 시작됐다


건축을 하면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제가 예술혼이 불타오르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만드는 거 자체에 대한 재미는 되게 많은 편이었죠. 그리고 제가 당시 고민하던 진로는 통계나 프로그래밍, 회계 분야였는데, 실체로 남지 못하는 결과물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어요.


그렇게 건축과 수업을 들으며 재미를 느꼈나요?

네. 실제로 1학년 설계 같은 경우에는 학기 초반부터 모델을 이것저것 만들어 볼 수 있더라고요. 이게 좋았어요. 그리고 설계 과정, 그러니까 아이디어를 구체화해서 건축물이나 모델로 실제화하는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설계 수업 외에도 서양건축사나 건축과 사회 같은 수업들이 기억에 남아요. 공학 관련 수업도 많이 들었고요. 건축과에서 3, 4학년에 이수해야 하는 수업들을 거의 들었던 거 같네요.

지금은 본인의 집도 직접 뚝딱뚝딱 공사하게 됐다.


당시에, 통계학과와 달리 건축과에 대한 확신이 있었으니 유학을 준비했던 거겠죠?

그렇죠. 그때는 제가 아는 건축가분들 대부분이 유학을 다녀오셨어요. 그래서 ‘아 일단 유학을 가야겠다’ 싶었죠. 어차피 유학을 가게 될 거라면 전과를 해서 4년을 더 다니는 것보다는 유학을 가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했던 거고요. 지금도 건축에 대한 확신은 여전해요. 다만, 건축만이 커리어의 끝일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있어요.


유학 준비할 때, 건축과 출신이 아닌 데서 오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땠어요?

맞아요 많았어요. 그때는 제가 설계도 처음 할 때였고 아는 선후배도 많이 없었죠. 그래서 리소스나 레퍼런스 자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준비를 해야만 했던 거 같아요. 심지어 누군가의 포트폴리오를 본 기회도 많지 않았어요. 설계수업을 처음으로 들으면서 동시에 포트폴리오 준비를 하니 다른 분들에 비해 직접 수행한 작업 자체도 많지 않았고요.

유학을 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후부터 우리 학교에서 하는 AA Visiting School 같은 활동을 많이 찾아 나섰어요. 해외 스튜디오도 가고 전시팀(현 큐브 에이)도 참여하고요.

그리고 사실 제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수업을 들었던 교수님들께 포트폴리오 리뷰를 해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는 것도 되게 어려워했던 거 같아요. 다른 학과에서는 건축학과만큼 교수님과 밀접하게 접촉할 일이 많지 않으니 ‘이런 걸 부탁해도 되는 사이인가?’ 싶었던 거죠.


그러기에 지금은 건축과 출신들과 엄청 잘 지내고 있는데 수줍음을 깨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전시팀이 계기였어요. 제가 막 건축과 수업을 들을 때, 건축과에 전시기획팀이 생겼어요. 제가 알고 지내는 건축과 출신의 60% 이상은 전시팀 친구들이에요. 특히 그때 08학번의 세철이 형이랑 전시팀을 하면서 좀 친해졌는데 유학을 준비할 때 형이 많이 도와줬어요. 당시 세철이 형도 포트폴리오를 준비할 때라 이것저것 되게 많이 알려줬어요. 제 포트폴리오에 대한 리뷰도 많이 해줬고요.

오세철 그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가 바로가기

2016년, 전시팀 2기. 이때 두 친구와 대표단으로 활동을 했다.


결국, 유학까지 이어진 거네요. 유학은 만족스러웠나요?

솔직히는 리소스 없이 준비한 것의 한계를 느꼈어요. 유학을 오고 나니 내 성향상 이 학교에 오는 게 맞지 않았구나 싶은 거죠. 특히나 그때는 학교 이름에 맞춰서 지원한 거도 컸던 거 같아요. 건축 안에 그렇게 다른 스타일들이 세분화되어있다는 거도 잘 몰랐거든요.

유학을 준비하면서 학생 작업도 많이 보고 했는데 그때의 저에게는 모두 신기하고 새롭게 느껴졌던 거죠. 설계를 조금 더 해보고 건축 스타일에 대해서 더 알아봤더라면 좀 더 저와 맞는 학교를 갔을 것 같은 아쉬움은 있어요.

학교에 대한 개인적인 만족도를 제외하고 유학 자체에 대한 만족도라고 하면 매우 만족스러웠어요.


어떤 부분에 만족하는 건지 궁금하네요

일단 새로운 방법론 같은 게 재밌었어요. 많은 설계 스튜디오를 들은 건 아니지만,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발전시키는 부분이 재밌었고, 설계 자체도 힘든 부분이 있었지만 재밌었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길들이 펼쳐지는 기분이었어요. 새롭게 보이는 것들도 많았고요. 한국에서 학교 다니다가 해외로 인턴을 나온 사람들도 많긴 하지만 저에게는 그게 유학에 오고 나서야 비로소 새롭게 보인 길들이었어요.


유학 후 취업은 어땠어요?

제가 16년에 유펜으로 유학을 갔어요. 그리고 중간에 1년 휴학을 해서 20년에 졸업을 했죠. 그 해엔 모두 아시는 covid-19가 있었고요. 당시 3월엔 인터뷰도 많이 들어왔어요. 실제 취업 직전인 회사들도 많았죠. 그런데 미국에 covid-19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들이 멈췄어요.

그래서 그해 잠시 한국에 돌아와서 일했어요. 반년 정도 일하다가 9월에 다시 미국에 돌아갔어요. 다행히 그 해 11월 Dattner라는 곳에 취업을 했지만, 여러모로 쉽지 않았어요.

뉴욕에서의 건축 


미국에서의 건축은 어때요?

실시 위주로 많이 설계를 하는 곳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가끔 괜찮다고 생각되는 일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정말 드문 곳이었어요. 실제로 재미있는 디자인을 하고 있다는 느낌은 없었죠. 저는 짓는 거 자체에서는 성취감을 많이 얻지 못하더라고요. 좋은 것을 지어야 성취감을 얻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고민이 많은 상태이겠네요.

조금은 있죠.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졸업하기 전까지 일을 했던 곳들이 모두 저에게 괜찮았던 곳이었어요. 그래서 일도 재미있게 했는데 여기서 접한 일들은 아직 재밌지는 않아요. 그래서 빨리 돌아가서 재밌는 일을 만들어 가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결국 지금 이 방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지가 제일 큰 고민 같고요.

2019년, 유학 중 휴학을 하고 시게루반과 MVRDV에서 일을 했다.


결국 한국엔 돌아올 생각인 건가요?

맞아요. 한국 가서 일을 하든가 아니면 전에 일했던 나라들에서 다시 일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아마 한국에 돌아가겠죠. 저는 지금 외국생활에 대한 피로도가 조금 높은 상태예요.


스스로 정한 결정의 기한 같은 게 있어요?

일단은 내년 여름에 지금 가지고 있는 비자가 만료돼요. 그때 비자가 끝나고 다른 비자를 받지 못하면 고민이 자연스레 종결되는 경우의 수도 있죠. 사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몰라도, 건축사를 따야 미국에 돌아온 이유를 충족시킨다는 생각이에요.


원하는 넥스트 커리어의 방향? 느낌 같은 건 뭐가 있어요?

‘재밌는 걸 하고 싶다.’ 이왕이면 건축이랑 관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요. 제가 지금까지 의사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요소는 재미였어요. 건축을 시작한 거도 ‘재미있을 거 같아서’였고,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하는 것도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고요. 지금 고민하는 것도 재미가 없어서, 뭐 더 거창하게 말하면 이걸 하는 내가 지금 행복한가 인 거죠.


지금 그래도 재미있을 거 같다는 기대가 되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어요?

여전히 지금 가장 재미있어하는 건 아무래도 일단 건축. 그리고 F&B(식음료). 주변에서 바 차리자 펍을 하자 이런 얘기를 종종 듣는데 기회가 되면 할 수도 있고, 하고도 싶어요. 근데 건축을 놓고 싶지는 않아요. 일단은 건축을 재밌게 하고 싶죠.

그의 인생에 빠지지 않는 한 가지. 食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편일까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얘기했던 게,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게 제 삶의 목표예요. 시간이 지나며, 제가 그럴 수 있는 재목인지 의심도 많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건축이라는 분야가 온전히 저만의 재능과 노력으로 성취되는 분야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걸 이루지 못하면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되게 많이 하는 거 같아요. 아마 제가 아직 제 작업을 제대로 시작한 건 아니니까,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죠.

그런데, 때마침 오늘 다녀온 에바 헤세 전시에서 대답을 얻은 것 같아요.


어떤 대답이죠?

거기 있는 글 중에 하나가 인상 깊었어요. 에바 헤세도 지금 보면 예술계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지만, 당시에는 자신에 대한 의심이 엄청 많았더라고요. 주위 예술가들이 ‘너 되게 재능 있고 계속 예술을 해야 한다고 얘기해줘서 예술을 계속하게 됐다’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솔 르윗이나 칼 안드레도 그중에 하나였고요.

그래서 그런 자기 의심을 갖는 것이 당연한 인간의 습성인가 싶기도 했어요. 에바 헤세 작업은 지금 봐도 되게 신선하고 새로워요. 에바 헤세는 결국 미니멀리즘 이후의 미술을 이끌어 나가고 미술사에 남을 만한 작업들을 만들었죠. 그런데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도 본인에게 의심을 가졌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 위로가 되는 셈이에요.


스스로 느끼는 불안함 같은 것도 있나요?

앞서 이야기 한, 제 자신에 대한 의심. 그런데, 그 부분을 제외하면 제가 앞으로 뭘 해야 하는가 에 대한 불안감은 없어요. 제 결정에 대한 자신감이 높은 편이라고 해야 하나. 유학과 취업을 겪으며 제 감에 대한 자신감이 높아졌어요. 이거 망할 거 같은데? 하면서 따라가면 정말 망하는 거죠. 그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보통 옳았던 거 같아요. 앞으로도 이걸 믿고 따라가려고 해요.


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분간 남은 계획이나 목표 같은 건 뭐가 있어요?

일단 올해 건축사 시험 통과하고 싶어요. 저는 뭔가를 하지 않으면 심심함을 느끼는 성격 같아요. 그리고 퀘스트 깨는 거를 좋아하는 성격인 거 같고요. 요즘에 회사일도 바빴고, 그 외의 시간에는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하기 바빴는데, 저만의 무언가를 다시 하고 싶어요.

그게 공모전의 형태일지 아니면 프로젝트일지 아니면 그냥 뭐 소소하게 목공이나 석공이 될지 모르지만 뭔가 창작을 하고 싶은 쿨타임이 찬 셈이죠. 그게 무엇이든, 곧 저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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