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인터뷰 시리즈는 다양한 동문들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자신의 소식을 전하고 싶거나 오랜만에 소식을 묻고, 들어보고 싶은 동문들이 있다면 ysarch@gmail.com 혹은 카카오채널 @연세건축총동문회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순서대로 12 차준연, 10 유성철. 묘하게 분위기가 닮았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성철: 10학번이고 유성철이라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유학하고 현지에서 취직하기를 꿈꿨으나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작년 6월 한국으로 도피했다. 지금은 이상대 소장님의 부름을 받아 스페이스연에 다니고 있다.
준연: 12학번 차준연이다. 졸업하고 20년도 1월부터 스페이스연에 들어와서 일하고 있다.
스페이스연은 어떤 곳인가?
준연: 이상대 소장님(84학번)과 한형우 교수님(82학번), 직원 네 명까지 총 여섯 명으로 구성된 아뜰리에다. 주택, 근린생활시설, 도서관, 공공시설 등 생활에 밀접한 건축에서 그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면서 다양한 공간적 경험을 제공하려고 하는 건축사사무소라고 본다. 여느 아뜰리에와 마찬가지로 1인당 하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고군 분투하고 있다. 성철이 형도 들어오자 마자 함께 공모전을 했다.
성철: 첫 달은 정신없이 공모전을 하고, 두 달 정도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차근차근 배우겠거니 했는데 바로 일을 주셨다.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해보라고 하시니 굉장히 당황스러운 요즘이지만, 꿋꿋하게 부딪치면서 일을 배우고 있다.
이 사진은 컨셉사진으로 실제 업무모습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소장님과 교수님은 각자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궁금하다.
준연: 최근에는 이상대 소장님이 대부분의 실무를 맡아서 하신다. 교수님은 아무래도 학교 강의가 있으시다 보니 공모전을 위주로 참여하신다. 구성원 모두가 프로젝트를 하나씩 맡아서 진행 하고, 최종적인 디자인은 소장님께서 결정하신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함께 제안을 하며 디자인에 참여하는 식이다.
이제 막 실무를 시작하는 입장에서 디테일을 풀어나가는 게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어떻게 풀어가고 있나? 소장님이 도와 주시는지.
성철: 물론 전반적인 체크를 해 주신다. 하지만 아무래도 프로젝트가 여러 개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보실 수는 없기에 각 프로젝트 담당자가 알아서 풀어가는 분위기가 강하다.
준연: 그렇다. 3D상에서 디테일에 대한 방향을 결정하고, 직원이 도면상에서 구현하는 방식이다. 소장님께 확인받긴 하지만, 가능하면 직원들끼리 상의하면서 해결하려고 한다. 각자 프로젝트를 서로 도우며 하다보니 회사 분위기 자체가 계급이 없다. 각 프로젝트 메인 담당자가 그 프로젝트의 팀장이고, 다른 프로젝트에 가면 팀원이 되는 형태다. 명함에도 팀장 외에는 그냥 디자이너라고만 되어있다.
그래도 대외적으로 업무를 진행할 때는 직급이 없으면 불편하지 않나?
성철: 하하 맞다. 그래서 협력업체한테는 무시를 받더라도 그냥 사원이라고 말하는 편이다. 그래야 물어보기도 편하다. 소장님은 직원들이 하대 당할까 좋아하시지 않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하대 당하면서 받는 스트레스 보다 내가 모르는데 아는 척하면서 일을 처리하는 게 더 힘들다.
프로젝트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각자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나?
준연: 작년 3월에 처음 맡아서 한 제기동역 리모델링 제안공모전이 당선되어버리는 바람에 20년도에는 주로 실시설계 MP일을 했다. 난생 처음 공모전 당선에 실시설계 MP를 맡아 기쁘기도 했지만 리모델링 프로젝트이다 보니 디테일이 중요한 작업이라 부담이 많이 됐다. 더군다나 서울교통공사라는 발주처의 지하철역 리모델링이라는 특수성때문에 사내에 축적된 데이터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 다행히 소장님께서 여러모로 신경을 써 주셔서 무사히 끝냈다.
성철: 반포동에 지하 2층 지상 6층짜리 근린 생활시설을 하고 있다. 연면적은 1000㎡ 정도 규모다. 첫 프로젝트다 보니 디자인적으로 욕심을 부리기 보다는 법규와 제재에 맞춰 어떻게 건축을 풀어나갈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다들 경력에 비해 실무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쌓는 것 같다.
준연: 아뜰리에의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장님께서 그런 부분에 많이 신경 써 주셔서 그런 것 같다. 우리가 업무를 하면서 무엇을 배울 수 있고,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를 세심하게 챙겨 주시는 것 같다.
성철: 동감한다. 함께 미팅을 다닐 때면 “너도 나중에 사무소 차릴 거니까 이렇게 일하는 거 봐야지.”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신다. 소장님에게 일을 배우고 싶어서 지원한 입장에서 신경 써 주시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아뜰리에에서 일하는 것을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고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지금까지 회사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는데, 그래도 불편한 점이나 아쉬운 점이 하나쯤은 있지 않나?
준연: 입사하자마자 선임들이 퇴사를 해서 대형설계사무소를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는 있는 것 같다. 디자인에선 디테일을 하나하나 배워가고, 실무적으로는 어떻게 일을 해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 배워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닌가. 그렇게 선임으로부터 차근차근 배워서 4년차가 된 경력자와 선임없이 처음부터 넓은 스펙트럼의 일을 처리하며 4년차가 된 경력자와 기초적인 단단함의 차이가 있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
성철: 맞다. 소장님께서는 처음이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말씀하시지만, 일을 하다 보면 막연함에 불안하고 답답할 때가 종종 있다. 아무래도 모르는 게 있으면 누군가에게 확인을 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인데 어떻게든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것 같다.
준연: 일이 진행이 되긴 하는데 내가 맞게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술과 함께
실무를 처음 하면서 학생 때 몰랐던 것을 알게 된 점이 있나? 혹은 ‘학생 때 배웠으면 참 좋았겠다.’ 싶은 게 있나?
성철: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근린생활시설이다 보니 용적률을 최대한 끌어내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더라. 사실 학교 다닐 때는 내가 디자인하고 싶은 게 우선이고 용적률은 과감하게 포기(?) 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아니다. 건축주의 최대 관심사는 용적률과 주차대수를 최대한 뽑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건축가는 기본적으로 그 수요를 맞춰 주어야 한다. 용적률과 주차대수를 포함한 법규의 틀이 우선이고 디자인은 그 안에서 최대한 재밌는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 같다.
준연: 실무를 하고 보니 학교에서 해왔던 설계는 판타지 세계였다. 멋진 이미지와 그럴싸한 모델을 만드는데 필요이상의 시간을 투자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실무적으로 정말 필요한 일들을 중점적으로 배웠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학교 선후배에서 회사 동료가 되기까지 여정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각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준연: 디자인 자체보다 주변의 주택, 근생건물들이 디자인되는 제도적 시스템에 더 관심이 있는 편이다.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느껴서 유학도 고민을 해봤지만, 외국에서 학습해온 방법이 한국에선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국내에서 실무를 빨리 경험해보고,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지식을 국내 대학원에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취업준비를 했다. 결과가 좋진 않았다.
안 좋았다는 게?
준연: 원래 아뜰리에를 가고 싶었고, 가려고 마음먹었지만 취업시즌이 되니 대형설계사무소에 눈이 가더라. 그래서 해안건축에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지원했던 다른 아뜰리에에선 ‘포트폴리오 공부좀 해라’라는 말까지 들었다. 당시에는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던 것 같다.
저런…. 그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교수님인가.
준연: 하하하. 5학년 2학기 중에 스페이스연에서 채용을 한다는 소문이 들려서 이상대 소장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이미 사람을 뽑았다고 하셨다. 몇번의 취업 실패 후에 좀 쉬자고 생각하면서 게임중이었는데 감사하게도 다시 연락을 주시더라.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성철의 경우 유학을 간 이유가 궁금하다.
성철: 학부를 졸업할 즈음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당장 실무를 하기에는 아직 아는 것이 많이 없다는 생각이 컸다. 당시 유학을 준비하면서 여러 학교를 알아보았는데, 많은 학교들이 대학원 과정에서도 우리가 학부 때 경험했던 아카데믹하고 아티스틱한 부분의 연장선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 네덜란드는 굉장히 실용적인 부분을 집중적으로 가르친다고 하여 네덜란드 델프트를 선택했다. 물론 학비나 생활비가 미국 유학에 비해 많이 저렴하다는 점도 한 몫 했고.
um. um.
실용적인 부분을 가르친다는 게 정확히 어떤 건가?
성철: 다양한 스튜디오가 있지만, 모든 스튜디오가 지속가능성과 에너지를 최대한 적게 쓰는 것을 고려하는 것을 요구한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학교들은 학부가 3년이고 대학원이 2년이다. 대학원 2년 동안은 본인 디자인을 기술적인 부분과 결합하는 연습을 끊임없이 한다. 정말 작은 집이라도 단열과 방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기초는 어떻게 구현되는지 등, 처음부터 자기 디자인과 접목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기본적으로 아무리 새로운 아이디어라 해도 건물로 구현될 수 없다면 필요 없다는 게 그들의 사고 방식이다.
공감가는 교육 방식이다. 하지만 실무 경험이 없는 학생 입장에서 구현이 어떻게 될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
성철: 스튜디오를 들어가면 디자인 튜터와 빌딩테크놀로지 튜터가 각각 따로 있다. 빌딩테크놀로지 튜터는 학생들이 디자인한 건물이 실제 지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매주 디자인 튜터와 빌딩테크놀로지 튜터를 만나면서 디자인을 같이 발전시켜나가기 때문에 어느 한 쪽에만 치우쳐서는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디자인이 아무리 좋더라도 빌딩의 구조, 마감, 실내환경 및 지속가능성이 만족되지 않으면 패스를 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그런 교육 방식이 많은 도움이 됐다.
분야별로 튜터들이 도움을 준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현지에서 취직할 생각은 없었나?
성철: 당연히 있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들어오는 걸 선택했다.
코로나로 인해 감정적인 동요가 있었던 거다.
성철: 무엇보다 두려움이 가장 컸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는 게 느껴졌다. 동양인에 대한 적대감을 다룬 기사나 페이스북 글들이 많이 올라오기도 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했고 나쁜 경험을 한 적도 없지만 내가 스스로 작아지면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되더라.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걱정하는 내 모습을 견디기 힘들었다. 또 코로나를 대처하는 대중의 태도가 우리나라와 많이 달랐다. 한국 사람들이 스스로가 마스크를 잘 쓰고 방역을 챙기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유럽 현지인들은 마스크를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정부가 락다운을 시행했다고는 하나 시민들은 코로나에 대해 경각심을 갖지 않는 모습에 상황이 좋아질 것 같지 않았다. 네덜란드 건축 사무소들도 사정이 좋지 않다는 얘기도 많이 들려왔다.
전반적으로 위축되었을 것 같은데
성철: 그렇다.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현지인들의 그런 사고 방식까지 내가 받아들이면서 현지에 적응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더라. 결론적으로 아니라고 판단했고 작년 6월에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네덜란드에 남아서 취직을 하고 생활하는 친구들을 보면 대단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혹시 아들이 못믿을까봐 인증을 남기는 치밀함
각자의 이야기 잘 들었다. 둘은 나중에 본인 사무소를 차릴 생각이 있나?
성철/준연: 물론이다.
본인 사무소를 한다면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 꼭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운영, 설계방식, 복지 등등 무엇이든.
성철: 일단 프로젝트는 네덜란드에 있을 때부터 리노베이션 쪽에 관심이 많았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꼭 해보고 싶다.
준연: 하나부터 열까지 까다로운 게 많다고 해서 두렵긴 하지만 공동주택을 해보고 싶다. 또 근린생활시설도 여러 개 해보면서 능숙 해졌으면 한다. 그렇게 경험치를 쌓으면 어떤 형태로든 건축과 운영을 결합시킨 사업체를 만들고싶다. 그리고 음… 다른 부분은… 만약 내 사무소에 직원들이 있다면 동기부여 측면에서 성과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고싶다. 직원입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프로젝트에 애착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는 동기가 필요하다.
성철: 오오 좋은 생각인 것 같다. 공모전을 하다 보면 종종 현타가 오는데 인센티브가 있다면 아무래도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 대형사무소에 다니는 친구들이 당선되면 오히려 일만 많아진다며 본인이 하고 있는 공모전이 당선되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성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주변 이야기 듣지 말고 그냥 부딪치면 좋겠다. 경험이 아주 많은 건 아니지만 지금까진 일단 부딪치면 다 어떻게 되더라. 건축가로서의 길도 다양하게 있으니 본인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고민하지 말고 그냥 하시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준연: 여러분 중앙동아리 하세요~ 그래야 타과 학생들과 교류도 좀 할 수 있을테니까. 지나고보니 나는 결국 아는 사람이 다 건축과인 게 아쉽더라.
순서대로 12 차준연, 10 유성철. 묘하게 분위기가 닮았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성철: 10학번이고 유성철이라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유학하고 현지에서 취직하기를 꿈꿨으나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작년 6월 한국으로 도피했다. 지금은 이상대 소장님의 부름을 받아 스페이스연에 다니고 있다.
준연: 12학번 차준연이다. 졸업하고 20년도 1월부터 스페이스연에 들어와서 일하고 있다.
스페이스연은 어떤 곳인가?
준연: 이상대 소장님(84학번)과 한형우 교수님(82학번), 직원 네 명까지 총 여섯 명으로 구성된 아뜰리에다. 주택, 근린생활시설, 도서관, 공공시설 등 생활에 밀접한 건축에서 그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면서 다양한 공간적 경험을 제공하려고 하는 건축사사무소라고 본다. 여느 아뜰리에와 마찬가지로 1인당 하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고군 분투하고 있다. 성철이 형도 들어오자 마자 함께 공모전을 했다.
성철: 첫 달은 정신없이 공모전을 하고, 두 달 정도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차근차근 배우겠거니 했는데 바로 일을 주셨다.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해보라고 하시니 굉장히 당황스러운 요즘이지만, 꿋꿋하게 부딪치면서 일을 배우고 있다.
이 사진은 컨셉사진으로 실제 업무모습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소장님과 교수님은 각자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궁금하다.
준연: 최근에는 이상대 소장님이 대부분의 실무를 맡아서 하신다. 교수님은 아무래도 학교 강의가 있으시다 보니 공모전을 위주로 참여하신다. 구성원 모두가 프로젝트를 하나씩 맡아서 진행 하고, 최종적인 디자인은 소장님께서 결정하신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함께 제안을 하며 디자인에 참여하는 식이다.
이제 막 실무를 시작하는 입장에서 디테일을 풀어나가는 게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어떻게 풀어가고 있나? 소장님이 도와 주시는지.
성철: 물론 전반적인 체크를 해 주신다. 하지만 아무래도 프로젝트가 여러 개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보실 수는 없기에 각 프로젝트 담당자가 알아서 풀어가는 분위기가 강하다.
준연: 그렇다. 3D상에서 디테일에 대한 방향을 결정하고, 직원이 도면상에서 구현하는 방식이다. 소장님께 확인받긴 하지만, 가능하면 직원들끼리 상의하면서 해결하려고 한다. 각자 프로젝트를 서로 도우며 하다보니 회사 분위기 자체가 계급이 없다. 각 프로젝트 메인 담당자가 그 프로젝트의 팀장이고, 다른 프로젝트에 가면 팀원이 되는 형태다. 명함에도 팀장 외에는 그냥 디자이너라고만 되어있다.
그래도 대외적으로 업무를 진행할 때는 직급이 없으면 불편하지 않나?
성철: 하하 맞다. 그래서 협력업체한테는 무시를 받더라도 그냥 사원이라고 말하는 편이다. 그래야 물어보기도 편하다. 소장님은 직원들이 하대 당할까 좋아하시지 않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하대 당하면서 받는 스트레스 보다 내가 모르는데 아는 척하면서 일을 처리하는 게 더 힘들다.
프로젝트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각자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나?
준연: 작년 3월에 처음 맡아서 한 제기동역 리모델링 제안공모전이 당선되어버리는 바람에 20년도에는 주로 실시설계 MP일을 했다. 난생 처음 공모전 당선에 실시설계 MP를 맡아 기쁘기도 했지만 리모델링 프로젝트이다 보니 디테일이 중요한 작업이라 부담이 많이 됐다. 더군다나 서울교통공사라는 발주처의 지하철역 리모델링이라는 특수성때문에 사내에 축적된 데이터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 다행히 소장님께서 여러모로 신경을 써 주셔서 무사히 끝냈다.
성철: 반포동에 지하 2층 지상 6층짜리 근린 생활시설을 하고 있다. 연면적은 1000㎡ 정도 규모다. 첫 프로젝트다 보니 디자인적으로 욕심을 부리기 보다는 법규와 제재에 맞춰 어떻게 건축을 풀어나갈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다들 경력에 비해 실무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쌓는 것 같다.
준연: 아뜰리에의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장님께서 그런 부분에 많이 신경 써 주셔서 그런 것 같다. 우리가 업무를 하면서 무엇을 배울 수 있고,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를 세심하게 챙겨 주시는 것 같다.
성철: 동감한다. 함께 미팅을 다닐 때면 “너도 나중에 사무소 차릴 거니까 이렇게 일하는 거 봐야지.”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신다. 소장님에게 일을 배우고 싶어서 지원한 입장에서 신경 써 주시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아뜰리에에서 일하는 것을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고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지금까지 회사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는데, 그래도 불편한 점이나 아쉬운 점이 하나쯤은 있지 않나?
준연: 입사하자마자 선임들이 퇴사를 해서 대형설계사무소를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는 있는 것 같다. 디자인에선 디테일을 하나하나 배워가고, 실무적으로는 어떻게 일을 해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 배워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닌가. 그렇게 선임으로부터 차근차근 배워서 4년차가 된 경력자와 선임없이 처음부터 넓은 스펙트럼의 일을 처리하며 4년차가 된 경력자와 기초적인 단단함의 차이가 있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
성철: 맞다. 소장님께서는 처음이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말씀하시지만, 일을 하다 보면 막연함에 불안하고 답답할 때가 종종 있다. 아무래도 모르는 게 있으면 누군가에게 확인을 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인데 어떻게든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것 같다.
준연: 일이 진행이 되긴 하는데 내가 맞게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술과 함께
실무를 처음 하면서 학생 때 몰랐던 것을 알게 된 점이 있나? 혹은 ‘학생 때 배웠으면 참 좋았겠다.’ 싶은 게 있나?
성철: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근린생활시설이다 보니 용적률을 최대한 끌어내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더라. 사실 학교 다닐 때는 내가 디자인하고 싶은 게 우선이고 용적률은 과감하게 포기(?) 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아니다. 건축주의 최대 관심사는 용적률과 주차대수를 최대한 뽑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건축가는 기본적으로 그 수요를 맞춰 주어야 한다. 용적률과 주차대수를 포함한 법규의 틀이 우선이고 디자인은 그 안에서 최대한 재밌는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 같다.
준연: 실무를 하고 보니 학교에서 해왔던 설계는 판타지 세계였다. 멋진 이미지와 그럴싸한 모델을 만드는데 필요이상의 시간을 투자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실무적으로 정말 필요한 일들을 중점적으로 배웠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학교 선후배에서 회사 동료가 되기까지 여정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각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준연: 디자인 자체보다 주변의 주택, 근생건물들이 디자인되는 제도적 시스템에 더 관심이 있는 편이다.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느껴서 유학도 고민을 해봤지만, 외국에서 학습해온 방법이 한국에선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국내에서 실무를 빨리 경험해보고,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지식을 국내 대학원에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취업준비를 했다. 결과가 좋진 않았다.
안 좋았다는 게?
준연: 원래 아뜰리에를 가고 싶었고, 가려고 마음먹었지만 취업시즌이 되니 대형설계사무소에 눈이 가더라. 그래서 해안건축에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지원했던 다른 아뜰리에에선 ‘포트폴리오 공부좀 해라’라는 말까지 들었다. 당시에는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던 것 같다.
저런…. 그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교수님인가.
준연: 하하하. 5학년 2학기 중에 스페이스연에서 채용을 한다는 소문이 들려서 이상대 소장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이미 사람을 뽑았다고 하셨다. 몇번의 취업 실패 후에 좀 쉬자고 생각하면서 게임중이었는데 감사하게도 다시 연락을 주시더라.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성철의 경우 유학을 간 이유가 궁금하다.
성철: 학부를 졸업할 즈음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당장 실무를 하기에는 아직 아는 것이 많이 없다는 생각이 컸다. 당시 유학을 준비하면서 여러 학교를 알아보았는데, 많은 학교들이 대학원 과정에서도 우리가 학부 때 경험했던 아카데믹하고 아티스틱한 부분의 연장선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 네덜란드는 굉장히 실용적인 부분을 집중적으로 가르친다고 하여 네덜란드 델프트를 선택했다. 물론 학비나 생활비가 미국 유학에 비해 많이 저렴하다는 점도 한 몫 했고.
um. um.
실용적인 부분을 가르친다는 게 정확히 어떤 건가?
성철: 다양한 스튜디오가 있지만, 모든 스튜디오가 지속가능성과 에너지를 최대한 적게 쓰는 것을 고려하는 것을 요구한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학교들은 학부가 3년이고 대학원이 2년이다. 대학원 2년 동안은 본인 디자인을 기술적인 부분과 결합하는 연습을 끊임없이 한다. 정말 작은 집이라도 단열과 방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기초는 어떻게 구현되는지 등, 처음부터 자기 디자인과 접목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기본적으로 아무리 새로운 아이디어라 해도 건물로 구현될 수 없다면 필요 없다는 게 그들의 사고 방식이다.
공감가는 교육 방식이다. 하지만 실무 경험이 없는 학생 입장에서 구현이 어떻게 될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
성철: 스튜디오를 들어가면 디자인 튜터와 빌딩테크놀로지 튜터가 각각 따로 있다. 빌딩테크놀로지 튜터는 학생들이 디자인한 건물이 실제 지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매주 디자인 튜터와 빌딩테크놀로지 튜터를 만나면서 디자인을 같이 발전시켜나가기 때문에 어느 한 쪽에만 치우쳐서는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디자인이 아무리 좋더라도 빌딩의 구조, 마감, 실내환경 및 지속가능성이 만족되지 않으면 패스를 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그런 교육 방식이 많은 도움이 됐다.
분야별로 튜터들이 도움을 준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현지에서 취직할 생각은 없었나?
성철: 당연히 있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들어오는 걸 선택했다.
코로나로 인해 감정적인 동요가 있었던 거다.
성철: 무엇보다 두려움이 가장 컸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는 게 느껴졌다. 동양인에 대한 적대감을 다룬 기사나 페이스북 글들이 많이 올라오기도 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했고 나쁜 경험을 한 적도 없지만 내가 스스로 작아지면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되더라.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걱정하는 내 모습을 견디기 힘들었다. 또 코로나를 대처하는 대중의 태도가 우리나라와 많이 달랐다. 한국 사람들이 스스로가 마스크를 잘 쓰고 방역을 챙기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유럽 현지인들은 마스크를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정부가 락다운을 시행했다고는 하나 시민들은 코로나에 대해 경각심을 갖지 않는 모습에 상황이 좋아질 것 같지 않았다. 네덜란드 건축 사무소들도 사정이 좋지 않다는 얘기도 많이 들려왔다.
전반적으로 위축되었을 것 같은데
성철: 그렇다.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현지인들의 그런 사고 방식까지 내가 받아들이면서 현지에 적응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더라. 결론적으로 아니라고 판단했고 작년 6월에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네덜란드에 남아서 취직을 하고 생활하는 친구들을 보면 대단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혹시 아들이 못믿을까봐 인증을 남기는 치밀함
각자의 이야기 잘 들었다. 둘은 나중에 본인 사무소를 차릴 생각이 있나?
성철/준연: 물론이다.
본인 사무소를 한다면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 꼭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운영, 설계방식, 복지 등등 무엇이든.
성철: 일단 프로젝트는 네덜란드에 있을 때부터 리노베이션 쪽에 관심이 많았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꼭 해보고 싶다.
준연: 하나부터 열까지 까다로운 게 많다고 해서 두렵긴 하지만 공동주택을 해보고 싶다. 또 근린생활시설도 여러 개 해보면서 능숙 해졌으면 한다. 그렇게 경험치를 쌓으면 어떤 형태로든 건축과 운영을 결합시킨 사업체를 만들고싶다. 그리고 음… 다른 부분은… 만약 내 사무소에 직원들이 있다면 동기부여 측면에서 성과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고싶다. 직원입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프로젝트에 애착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는 동기가 필요하다.
성철: 오오 좋은 생각인 것 같다. 공모전을 하다 보면 종종 현타가 오는데 인센티브가 있다면 아무래도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 대형사무소에 다니는 친구들이 당선되면 오히려 일만 많아진다며 본인이 하고 있는 공모전이 당선되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성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주변 이야기 듣지 말고 그냥 부딪치면 좋겠다. 경험이 아주 많은 건 아니지만 지금까진 일단 부딪치면 다 어떻게 되더라. 건축가로서의 길도 다양하게 있으니 본인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고민하지 말고 그냥 하시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준연: 여러분 중앙동아리 하세요~ 그래야 타과 학생들과 교류도 좀 할 수 있을테니까. 지나고보니 나는 결국 아는 사람이 다 건축과인 게 아쉽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