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JOB多)한 능력자, 84 윤재선

릴레이 인터뷰는 다양한 동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담아냅니다.
자신의 소식을 전하고 싶거나 오랜만에 소식을 묻고, 들어보고 싶은 동문들이 있다면 ysarch@yonsei.ac.kr 혹은 카카오채널 @연세건축총동문회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학회 ‘형’의 창시자. 서울 국제 건축영화제에서 7년간 위원장을 맡으며 행사의 부흥을 이끌었다. 건축 시공 현장에서 한 땀 한 땀 모아둔 정보를 정갈하게 정리한 ‘감 매거진’은 이제 설계인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책이 되었다. 모든 일이 사람 만나서 노는 게 즐거워서 한다는, 유쾌한 기획자 84 윤재선을 만났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반갑다. 84학번 윤재선이라고 한다. 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고, 동시에 감 매거진이라는 단행본을 만들고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해왔고, 앞으로도 해나갈 예정이다.


학교 생활에 대해 궁금하다. 학교생활 때 애정을 갖고 했던 일이 있나.

‘형’이라는 학회를 친구들과 만들었고 정말 애정을 갖고 학창 시절을 불태웠다. 정말 재밌었다.


지금도 ‘형’은 열심히 운영 중인 학회 아닌가. 처음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엔 몇몇의 건축 스터디로 시작하다 동아리로 발전했다. 디자인을 배우기엔 그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 설계, 디자인을 정말 잘해보고 싶었다. 그런 욕구와 재능이 넘치던 끼가 많은 후배들이 자연스레 모였고 우린 마음껏 놀면서 배울 수 있는 나름의 방법론과 체계를 구성했었다. 연대의 특성상 개인을 속박하지 않는, 히피같이 자유러우면서도 다양한 개인의 특성과 문화가 공존하는 집단으로 스스로 성장했다. 연대의 독특한 개성이 극대화된 놀이와 배움이 뒤섞인 곳이었다.


지나고 보니, 원하던 대로 운영이 되었나

학회 초기에 분위기 조성을 위한 선배들의 노력이 있었다. 후배들이 공모전을 한다고 하면 퇴근하고 먹을 것을 사 가지고 가서 위로도 해주고, 조언도 하다가 동아리방에서 잠깐 자다가 다음날 등교나 출근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축제 기간에 맞춰 졸업생들이 돈을 걷어서 후배들이 실제 1:1 구조물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학생들이 디자인을 하고 구조를 하는 선배를 데려와서 이게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실제 지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조언해 주었다. 제목이 ‘시대의 바람을 측정하는 기계’ 였었나. 사람들이 구조물 근처를 지나가면서 사진도 찍고, 놀고 하면서 건축과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확실히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던 것 같다. 

형 구조물, 시대의 바람을 측정하는 기계


지난 학부 시절을 기억해보면 ‘형 파티’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도 직접 만든 것인가?

뭔가 큰 의미를 갖고 만든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세월을 거슬러 10주년이 되었을 때 뭔가 기념해야 될 거 같아 ‘형 10주년 파티’를 했다. 이후 미국에서 4년간 유학과 실무를 끝내고 돌아와 보니 내가 미국으로 떠날 때 이후로 선배와 후배 간의 교류가 소홀해진 채로 머물러 있더라. 이에 몇몇 창단 멤버와 골수 후배들이 다시 뭉쳐 준비한 것이 기획한 것이 ‘형 30주년 파티’였다. 

형 30주년 행사 현장


그렇게 30주년 파티는 건축과를 나와서 먹고사는 문제로 자존감이 떨어진 후배들에 성공 코스프레로 대대적으로 크게 준비했다. 반포의 세빛둥둥섬을 빌려 150여 명 졸업회원과 재학 회원이 모인 서로의 안부와 건축을 통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서로의 안부와 위로를 가진 자리였다. ‘우리 여기 잘 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너희는 충분하다. 너희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 느낌을 주고받는 곳이었다. 그리고 10년는 너무 기니 4년마다 올림픽 열리는 해에 하지고 있는데 코로나로 다 같이 못 만나고 있다.


‘형’ 초창기 멤버는 누가 있었나?

초창기 멤버는 김형수(83), 윤승현(現 중앙대 교수), 안성진(現 창조 부사장), 성우철(現 단국대 교수)가 있고 이어서 조민석 유현준 이상윤 양수인 등등 구성원들이 많았다. 형 파티에 모인 150명 정도의 동문 중에 30%은 교수가 되어 있었고, 잘 나가는 아뜰리에를 운영하는 동문들도 많았다. 문득 ‘우리나라의 아뜰리에 문화는 ‘형’이 주도한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지금 아뜰리에를 운영하고 있다.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

팀 일오삼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대형 프로젝트보다는 크지 않은 건물들을 주로 다룬다. 하지만 대신 설계부터 시공까지 관여하며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가구나 손잡이처럼 우리가 직접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려고 노력하는 곳이다. 실제로 작은 가구들은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경우가 많이 있다.

👉팀일오삼 건축사 사무소 바로가기

직접 지은 집. 지하엔 특별한 아지트가 있다.


지금 인터뷰 중인 공간도 인상적이다.

이곳도 성대에서 강의하던 시절 제자들과 직접 만든 아지트이다. 가구들도 다 직접 만든 것이다. 많은 제자들이 이곳에서 나와 놀아주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추억도 많은 곳이기도 하다. 

개국공신들의 위풍당당한 모습


직접 시공까지 하는 아뜰리에를 운영하며 재료를 다루는 매거진을 내고 있다. 

감 매거진을 만든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설계한 건물들 중 간혹 시공까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반복되는 어려움이 있었다. 재료를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시공 방식은 어떻게 되는지 정보를 얻기가 너무 어려웠다. 결정적으로 다음 세 가지의 이유가 컸다.

  • 도면을 열심히 그려서 전달했는데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 일쑤였다. 정말 최선의 결과가 그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게 답답했다.
  • 자꾸 내가 그린 도면대로 시공을 못한다고 하더라. 적합한 시공 방식을 알려주어도 시공 업체는 본인들이 이전부터 해오던 방식만 고집할 뿐이었다.
  • ‘그럼에도 모든 것의 시작이며 마무리인 설계는 정작 왜 돈을 왜 많이 벌기 힘들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초기 설계 정보가 유통, 시공까지 연결되지 않고 단절된 정보체계에서 결국 시공 도면을 그리는 설계를 하는 사람이 시공도 직접 해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직접 시공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크게 재료, 관리, 인력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를 다룰 수만 있다면 건축가가 시공을 하는데 크게 무리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 만들게 된 것이 감 매거진 인 것인가.

맞다. 그래서 첫 단계로 설꼐단계부터 필요한 우리나라의 각 재료별 정보와 시공에 대한 정보를 집약하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감매거진은 잡지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단행본으로 나오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사업적 전략인가?

사업적 전략이 맞다. 하하하. 잡지로 발간을 하게 되면 매달 새로운 책을 매대에 올리고 이전 달의 책은 빼야 한다. 하지만 단행본으로 하게 되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 또한 정해진 시간 안에 매달 한 권씩 발간하려면 에디터들의 업무 피로도가 너무 높을 것에 대한 염려도 있었다.

감매거진은 단행본이기에, 매대에 모두 전시될 수 있다.


책의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나?

크게 3가지로 재료, 기술 그리고 제품을 다루며 주 기능은 큐레이션이다. 이 선별을 위해 기준을 세우기 위해 그 배경으로 재료의 특성, 인문/사회적 맥락, 역사 그리고 산업 등을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점은 우리나라 산업의 구조와 이에 영향을 받는 시공 현장의 체계에 대한 정보를 주려고 한다. 그것이 건축가로 하여금 재료를 보다 적절한 곳에 알맞게 쓸 수 있도록 해주길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재료를 다루는 공장에 대한 정보를 나열하고 유통에 대한 이야기를 꼭 넣으려고 노력한다. 각 유통사의 특징을 통해 건축가가 시공을 하는 데 있어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선별하고 분류했다.

감매거진 / 럭스틸, 동양강철 공장투어


건축가가 재료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스스로의 만족도도 높아지겠지만, 사회 전반의 건축시공 분야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그게 감 매거진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아름답고 좋은 것을 만들고자 하는 건축가가 시공의 벽에 부딪혀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건축이라는 체계가 시공단계에서 편의에 의해 디자인이 포기되지 않고, 디자이너의 의도를 온전히 실현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도전의 연속, 실험의 연속 같다. 또 다른 도전도 궁금하다.

서울 국제 건축영화제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형을 같이 기획한 김형수라는 선배 때문이다! 워낙 어떤 조직에 소속되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설계를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심의에 막혀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다행히 형수형의 도움을 통해 잘 해결할 수 있었는데, 당시 보답으로 ‘도와드릴 일 있으면 말씀만 하시라.’고 한 게 화근이었다. 


그 도와드릴 일이 영화제 운영진이었나

맞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영화제에 들어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한동안 영화제에서 다양한 관계를 해결하는 민원 담당을 맡았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내가 일이 좀 생겨서 네가 위원장을 좀 해야겠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도망갔다.

건축을 전문으로 다룬 서울국제건축영화제, SIAFF 2021은 9/8 ~ 9/18 까지 진행된다. 👉바로가기


떠맡듯 맞은 위원장직인 셈이다.

그래도 일단 맡았으니 기본적인 토대와 영화제로써 구실을 할 수 있는 행사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에서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나아갔다. 일단은 영화제가 뭔지도 몰랐던 터라 영화제가 왜 필요한 지 공부하는 것이 첫 단계였다. 공부해보니 결국 영화제는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더라. 


그다음은 어떤 과정이었나

다음으로 서울 국제 건축영화제가 전문적인 행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했다. 당시 서울 환경영화제의 김영우 프로그래머를 설득해 전반적인 기획을 맡겼다. 이전에는 대한건축사협회 회원으로 구성된 건축영화제위원회의 위원들이 스스로 상영될 영화를 선정하였다. 하지만 5회부터는 영화 전문가들이 콘셉트를 정하고 이에 걸맞은 영화와 프로그램을 선정하였다. 

어떻게 생각해 보아도 전문적인 행사이다.


이제 전문적인 행사가 된 셈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영화제를 대중들에게도 알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 김영우 프로그래머가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야 한다고 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가야 했던 것이다. 


어떤 이유인가

행사 끝나고 골목 술집에서 술 먹는 사람들이 다 영화계 인사들이거나 관련 기자들이었다. 3박 4일 동안 술도 먹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즐겁게 보냈더니 어느새 영화와 관련된 인맥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결국 그 덕분에 다음 영화제에서 영화와 관련된 인사들이 상당히 많은 도움을 주고 홍보가 되었다.

영화 상영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행사들이 함께하고 있다.


위원장직은 얼마간 수행한 건가?

그 후로 6회 더 진행하고 후임자에게 넘겼고 지금은 고문으로서 많은 관여는 안 한다. 중요한 건 개인보다도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다. 이제 올해 12회로 어는 정도 그 틀이 만들어져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 차근차근 발전해 나갈 거다. ^^


임기가 다 된 건가?

아니다. 사실 내 본업이 있는데 영화제를 계속해서 신경 쓴 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돈도 많이 든다. 6회 정도 진행했을 때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다른 일을 해야 하기에 위원장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영화제에도 더 나을 거다.


어느새 인터뷰 마지막이다. 인생 대부분 처음 시작하는 일 들이 많았다. 그래서 당장 다음 목표가 더 궁금한 것 같다.

일적으로 감씨 (감 매거진의 출판사)의 사회적인 역할을 더 공고히 하고 싶다. 

처음 단행본을 제작할 때 목표는 ‘감 매거진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멋지고 sexy하다고 느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안에 들어가는 사진, 표지, 종이의 재질 등 시각적인 부분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게 되더라. 결국 ‘1억 정도는 날린다는 생각으로 투자해보자!’는 마음으로 단행본 세 권을 만들어서 한꺼번에 출간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총 17권이 나왔고 올해가 지나면 누적 판매로 10만 권을 돌파할 것 같다. 나름대로 첫 단추는 잘 꿴 셈이다.


이제는 감씨를 기반으로 디지털화 기획을 하고 있다. 앞으로 재료에 대한 정보를 계속해서 모아가는 것과 동시에 IT화를 통해 플랫폼 안에서 직접 시공까지 진행할 수 있도록 구현을 하려고 한다. 앞서도 잠깐 이야기했듯, 이렇게 되면 디자이너들의 의도가 온전히 남아있는 프로젝트들이 늘어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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